최백수는 충북 오창에 산다. 모처럼 서울 갈 일이 생겼다. 오창에서 서울 가는 길은 대략 서너 가지다. 오창 간이 터미널에서 서울행 시외버스를 타는 방법이 가장 흔한 것이고, 청주에 가서 고속이나 시외버스를 타도 된다.


그 두 가지 방법은 다 불편하다. 우선 오창서 서울 가는 버스는 자주 있질 않다. 어떤 때는 1-2시간씩 기다려야할 경우도 있다. 청주로 가면 차는 자주 있지만 승용차로 30분 정도 가야한다.


요즘 그가 새로 개척한 방법이 있는데, 천안에 가서 전철을 이용하는 것이다. 오창서 천안 가는 시간이 40분 정도면 되니 청주보다 10분 정도 많지만 전철은 공짜로 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65세 이상 노인은 전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다 어차피 서울에선 전철을 이용해야하니까 오히려 편리한 면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최백수는 천안으로 차를 몬다. 천안까지 달리면서 늙기도 서러운데 차별대우까지 받는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서울에 산다면 굳이 승용차를 사서 운영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해본다. 승용차를 운영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까? 차량 구입비, 보헙료, 검사비, 수리비, 유류대 등등….


이렇게 많은 비용을 다 지출하자면 엄청 많은 돈이 들 것이다. 인터넷에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한 달에 승용차를 유지하는 비용은 평균 78만원이라고 되어있다. 자신은 그렇게 많이는 안 쓰겠지만 60만원은 들것이라고 추산해 본다.


서울에 살면서 전철만 타고 다닌다면 이 돈은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노후를 훨씬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다보니 천안역에 도착한다. 서울행 급행전철을 타고가면서 수도권 노인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한 달에 60만 원씩 절약하는 돈으로 우선 옷부터 몇 벌 사고 싶다. 오늘 점심도 비싼 것으로 사먹고 싶다. 이렇게 따지면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돈이 없어서 못하고 살았는데, 다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안을 출발한 급행전철은 평택 오산을 지나더니 수원에 정차한다. 옆자리에 앉은 노인들이 나누는 대화가 흥미롭다. 어젠 춘천에 가서 닭갈비를 먹었고, 오늘은 아산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올라가는 길이라고 한다.


한 달에 승용차 운영비로 60만원을 써도 기름값이 아까워서 어디 한번을 제대로 못 가봤다. 공짜로 이용하는 전철을 타고 강원도로 충청도로 마음 내키는 대로 구경 다닐 수 있는 수도권 노인들이 부럽다.


그들의 신나는 얘길 들으며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숨을 몰아쉰다. 다 같은 대한민국 노인인데 서울 노인들은 한 달에 60만 원 이상의 혜택을 받고, 시골 노인들은 아무 혜택도 못 받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떠올린다. 단지 시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불평등이라고 흥분하며 행정심판, 헌법소원, 가두시위 등을 연상해본다.


어느새 차는 용산역에 도착한다.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는 노래를 생각하면서 역사를 빠져나오니 선거 벽보들이 눈길을 끈다. 아직도 뜯어내지 못한 대선 벽보들이다. 이렇게 많은 후보들이 저렇게 많은 공약을 쏟아냈는데 어째서 시골노인 차별금지 공약은 없었을 걸까?


표만 얻을 수 있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주겠다고 하면서 시골노인의 한을 풀어줄 공약이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최백수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라는 노래를 중얼거린다. 어떻게 해야 시골 노인의 한을 풀 수 있는 지, 그렇게 해줄 사람을 알면 얼른 알려달라는 말을 되뇌면서 발길을 돌리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린다.


?저를 당선시켜주면 서울 노인들이 전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만큼 시골노인들은 시내버스를 공짜로 탈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1년 후 지방선거에 나올 사람이라고 한다. 선거는 대목장 중에서도 가장 큰 장이다. 최백수의 얼굴에 야릇한 기대감이 스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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