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서였다. 청주란 글자가 언뜻 스치는 기분을 느꼈다. 요즘은 차량넘버에 시?도를 표시하지 않으니 차에서 고향을 느낄 순 없다. 차량 옆에 '녹색수도 청주'란 스티커를 붙인 걸 봤던 것이다.


청주에서 볼 때는 아무 의미도 없었는데 외지에서 보니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한범덕 시장 시절엔 어딜 가더라도 녹색수도 청주란 말을 들었다. 조용한 교육도시 청주의 이미지와 녹색이란 말은 잘 어울린다.


녹색도시 청주라고 하면 적당할 텐데 수도란 말이 붙으니 과장됐다는 생각도 했다. 밖에서 보니 청주의 이미지를 잘 표현했다는 기분이 강했다. 얼마 전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청주공항을 방문했을 때 추 대표 옆에 앉아 있는 한범덕 전 시장을 보며 녹색수도 청주에 대한 꿈을 이루고 싶은 모양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난 7월 16일부터 청주가 갑자기 전국뉴스의 중심으로 부각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청주가 전국뉴스의 중심이 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단 몇 시간 동안 300mm 가까운 폭우에 전국이 놀랬던 것이다.


모든 언론이 청주의 물난리 소식을 전하는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청주에 살면서도 중앙뉴스를 통해서 물난리 소식을 들은 사람도 적지 않다. 모든 언론이 속보경쟁을 하는 바람에 외지 사람들은 청주가 통째로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걱정했던 모양이다.


사방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문자 한 통 없던 사람들로부터 무사하냐고 묻는 목소리가 다급했다. 덕분에 다시 소식이 트이고 언제 한번 만나자는 약속으로 이어졌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비록 연락은 안하고 살아도 마음속에 살아 있으면 오래 사는 것이고, 그렇게 처신하는 게 잘 사는 것이란 교훈을 터득하는 기회였다. 문제는 녹색수도 청주가 흙탕물이 범람하는 황색수도(黃色水道)로 이미지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물난리 이상으로 청주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이 충북도의원들이다. 물난리가 났으면 해외에 나갔다가도 돌아와야 하는 게 상식이다. 물난리가 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외유에 나설 수가 있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평소 같으면 이런 일은 지역뉴스 중에서도 단편에 불과할 텐데 김학철 도의원의 막말파문까지 겹치면서 매시간 중앙뉴스로 보도될 정도로 매스컴을 탔다. 아마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 김학철 도의원만큼 중앙언론의 조명을 받은 의원도 없을 것이다,


덕분에 녹색수도 청주가 쥐떼가 득실거리는 도시로 유명해졌으니 이 또한 청주의 청정 이미지를 오염시킨 뉴스였다. 청주를 전국 뉴스의 중심으로 부각시킨 사람이 또 있다. 바로 홍준표 한국당 대표였다.


7월 18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여야 4당 대표를 초청해서 오찬을 하는 날이었다. 제일야당 대표가 청와대를 가지 않고 청주에 온 것만으로도 기삿거리인데 그가 쏟아낸 말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자신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한미 FTA협상을 했고, 문 대통령은 자신을 제이의 을사늑약을 주도한 매국노라고 욕했다는 것이다. 매년 300억 불씩 흑자를 냄으로써 미국이 재협상을 하자고 할 정도로 잘된 협상인데 어째서 매국노냐는 항의였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언뜻 광우병 시위를 생각했을 것이다. 수십만 명이 촛불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했던 기억도 떠올렸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를 따지자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은 역사는 갈등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란 교훈 때문일 것이다. 이밖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구슬땀을 흘리며 봉사하는 모습도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영부인 뉴스로 청주가 무대였다.


조용한 교육도시란 청주의 이미지가 나쁜 쪽으로 유명해지는 걸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름다운 이미지도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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