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광호 한국인터넷뉴스 / 발행인

 

교도소에서의 소문은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신문기자가 소장을 해치웠다는 소문이 내 귀까지 들려오는데 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회에서 촌지 받아 처먹다가 목에 걸려 들어온 사이비 기자로만 인식되었던 이대한이 교도소장과의 단판에서 수형자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했다는 말에 모두들 감명 받은 모양이다.

우리방에서도 내가 힘이 있다고 생각했던지 감방장인 하기춘이 신상을 털어놓으면서 자기는 전과가 많아 3급 관서인 대전교도소나 청송교도소로 이감 갈 수 있다며 이를 좀 막아달라며 애원했다.

이대원은 “내가 무슨 힘이 있느냐”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자 하기춘은 자세를 바로잡고 이대한 앞에 바짝 다가와 ‘뺑’이의 전력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하기춘은 고향이 충주 교현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자동차 정비사로 복무한 인연으로 청주에 한 자동차 공업사에서 정비사로 일하며 춤 세계에 발을 디뎠다.

중학교 때는 달리기 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등, 체육으로 다져진 미끈한 몸매와 타고난 유머 감각으로 보는 이로부터 호감을 갖는 인상이다.

하기춘은 카바레가 몰려 있는 청주 사직동에 웅지를 틀고 낮에는 정비사로 밤에는 제비로 본격 활약했다.

삼주 카바레 문을 열자 사람들의 열기가 후끈 밀려나온다. 토요일이라 평일보다 사람이 많아 발 디딜틈이 없다.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혼자 투덜거리며 하기춘은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 먹잇감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하기춘은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 한 바퀴 주욱 돌아본다. 어디에 누가 와 있고 모르는 사람 중에는 어떤 새로운 여자가 와 있는지를 파악하고는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린다.

그럴듯한 체형에 춤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진 하기춘은 어떤 여자든 손만 잡게 되면 춤으로 달구고 말로 잔치를 해 어떤 여자든 한방에 날려 보낼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자신은 믿고 있다.

삼주카바레는 입구쪽은 환해 춤을 뽐내는 춤쟁이들이 춤을 추고 있고 안으로 들어 갈수록 점점 어두워져 제일 안쪽은 얼굴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곳이다.

이처럼 어두운 곳은 자기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초보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기춘은 전문가 입장에서 이곳을 그냥 지나칠 이유가 없다.

오늘은 토요일 젊은 여자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매의 눈초리로 한 여자에게 하기춘의 눈이 고정되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약간 수심찬 얼굴이지만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손에 낀 다이아반지와 목걸이에 보석은 그녀의 신분을 나타내주듯 했다.

장금이의 이영애처럼 생긴 동양적인 미인이다. 하기춘의 이상형이기도 한 그녀는 매우 도도해 보였다.

하기춘은 이 생활 10년 만에 이런 대어는 처음 보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누가 그 여자에게 손을 선뜻 내밀며 춤을 청하는 것이 아닌가? 하기춘은 바짝 긴장하고 지켜보고 있자 다행이도 그 여자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두 서너 차례 집요하게 그녀를 잡아 당겼지만 그녀는 춤 출줄 모른다며 끝내 거절했다. 하기춘은 혹여나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해 10여분 정도 기다려 봐도 아무런 조짐이 없자 하기춘은 얼른 그녀의 옆자리를 끼어 들었다.

옆에 앉은 하기춘은 특유의 말솜씨로 유혹의 손길을 뻗어 결국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물씬 풍기는 고급 향수 냄새와 그녀의 체취를 흠뻑 들이 마시며 서서히 브루스 리듬에 맞춰 후로링을 미끄러지듯 한바퀴 돌고 있었다. 그녀의 춤은 이제 막 머리를 올린 수준으로 겨우 발을 떼는 정도여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르쳐야 하는 초보자다.

하기춘은 속으로 생각한다. 하기야 제비에게는 가장 먹잇감으로 좋은 상대다. 이 여자가 춤바람이 나려면 6개월 정도, 지나야 되고 1년 정도 둘이 전국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정분이 나 빼도 박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카센터라도 하나 차려 달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떡 줄 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혼자 기와집을 졌다 부쳤다하며 생각이 많다.

하기춘은 더 어두운 곳으로 그녀를 이끌며 블루스에 이어 지르박으로 명쾌하게 그녀가 춤을 배워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리드해 나아갔다.

하기춘은 이 여자가 무엇 때문에 춤판에 나왔는지를 빨리 파악하려고 전력투구하고 있다.

하기춘은 블루스를 추면서 매너를 지키면서도 그녀가 남자의 육체가 그리워서 나왔음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그녀의 손을 파르르 떨고 있었고 하기춘의 밀착되는 몸에 어느 샌가 호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인 하기춘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예의 바른 중년신사로 행세하고 있다.

열기 찬 분위기를 벗어나 하기춘과 그녀는 우암산 우회도로를 거쳐 상당산성으로 차를 내달리고 있다. 싱그러운 초여름 밤을 만끽하며 오늘의 주인공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청주중앙공원 앞에서 장미주단이라는 포목점을 운영하는 박경자로 2년전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밀려온 허탈감에 친구의 권유로 춤을 시작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 한동안 쉬고 있다가 오늘 처음 삼주카바레에 갔다가 하기춘을 만난 게 된 것이다.

박경자는 오늘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았다. 하기춘의 예의 바른 신사도와 사내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체격에 오랜만에 마냥 안기고 싶은 심정이다.

그들은 닭 백숙과 함께 곁들인 대추술에 감흥이 돌았다. 두 사람은 오늘이 새로 태어난 생일이라고 선포하고 이 날을 영원히 기릴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영원한 춤 파트너로 죽는 날까지 서로를 아끼며 지켜 줄 것을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제2회 약혼식’을 상당산성 닭 백숙집에서 거행하게 된다.

하기춘은 서두리지 않는다. 박경자가 후끈 달아 올랐을 때 손을 대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여름에 더우면 누구나 옷을 벗기 마련이라며 그때를 하기춘은 기달릴 줄 아는 프로였다.

그날 이후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청주시내 카바레를 누비며 춤추며 사랑을 나누었다.

카바레 안팎에서는 하기춘과 박경자가 사이가 심상치 않다며 두 사람이 나타나면 삼삼오오 수꾼대기 시작했다.

하기춘이야 이런 사정을 모를리 없겠지만 박경자는 청주에서 큰 포목점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되자 춤추는 무대를 대전 홍명카바레로 옮겼다.

이들이 만나 춤을 춘지도 벌써 8개월이 되었고 하기춘은 사업자금 명목으로 우선 2,000만원을 빌려 달라고 해 꿀꺽했고 나머지 8천만원은 박경자가 다음달 계 타면 해주기로 되어 있었다.

홍명카바레는 청주보다 한발 앞서 신문화를 받아 드리고 있었다.

박경자가 홍명카바레에 처음 가던 날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춤을 한 옆에서 추고 있었다. 그동안 박경자는 하기춘에 이끌려 격렬한 춤사위로 젊음을 발산했지만 옆에서 추고 있는 춤사위는 리듬에 맞춰 조용하고 정적인 모습이 4~50대에 맞는 춤이라 생각했다.

박경자는 하기춘에게 물었다.

“저 춤은 무슨 춤이야?”

하기춘은 “음.. ‘리듬짝’이라고 하는데 김대중 걸음걸이 같다고 해 잘 안 추고 들 있어”

박경자는 더 이상 반응하지 못했다.

하기춘의 싫어하는 눈초리에 더 이상 물어 볼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자꾸만 그 쪽으로 신경이 쓰여 지는 것을 막을 도리도 없었다.

이를 눈치 챈 하기춘은 유성의 다른 카바레로 옮겼지만 그 곳은 더욱 심해 반 이상이 리듬짝을 추고 있었다.

하기춘은 당황했다. 박경자를 만난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동안은 자신이 가진 춤과 몸으로 박경자를 지켜 왔지만 박경자의 본격적인 춤바람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잘못하다간 카센터고 뭐고 다 날아갈 판국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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