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웅의 시각] 판사가 흔들리면 법치도 무너진다.

법관의 판결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징역을 살릴 수도 있으며, 금고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피고는 항소나 상고 등으로 불복할 수밖에 없다.


재판이 절대적으로 공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재판이 공정하지 않다면 누가 판결에 순응하겠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항할 것이다. 재판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하려고 모든 방법을 다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로우스쿨을 졸업하거나 사시에 합격하기도 어려운데, 다시 사법연수원을 거치게 하여 우수한 자들만 골라 판사로 임용하고 있다. 판사가 법을 잘 몰라서 불합리한 재판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위한 제도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동창이나 친구를 만나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판사도 돈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건 자본주의 사회여서 그렇다. 법관도 공무원이니 승진하고 싶고 여건이 좋은 곳에서 근무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온갖 유혹으로부터 탈피해서 재판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적인 보장도 하고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중삼중의 장치를 했는데도 판결이 불공정하다는 소리가 높다.


특히 판사가 돈에 약하다는 유전무죄라는 말이 유행가처럼 퍼져있다. 권력 앞에 속수무책이란 소문도 파다하다. 전관예우란 말도 불공정한 재판을 입증하는 증거다. 재판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만 많이 주면 유능한 전관을 변호사로 살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옳은 일을 했어도 불리한 게 재판이라고 여긴다.


이런 일이 쌓이다가 보니 재판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이다. 특히 정권의 운명이 좌우되는 시국재판에 대해서는 찬반공방이 패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격하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난리가 났다.


청와대를 비롯해 민주당 대표는 물론 전 현직 의원까지 나서서 판사를 비난했다. 20여만 명이나 되는 대중도 청와대 홈피에 막말공세를 퍼부었다. 이런 일을 당하는 판사의 기분은 어떨까?


테러를 당하는 것처럼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판사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판결을 비난하려면 헌법과 법률에 어떻게 어긋나는 지, 법관의 독립성이나 양심에 반하는 게 무엇인지를 규명하는데 집중해야할 것이다.

5, 16혁명을 일으킨 박정희는 민주적인 절차로는 통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유신을 선포했다. 유신체제를 유지하는 본산이 중정이었다. 중정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법으로 처벌한 게 아니라 폭력을 썼기 때문이다.


매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국회의원이고 장차관이고 판검사도 견뎌낼 수 없었다. 판사에 대해 막말 폭탄을 퍼붓는 사람을 보면서 중정을 떠올리는 것은 목표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반대하는 판결을 못하게 하는 공통점도 있다. 단지 수법만 다를 뿐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 판사를 막말폭탄으로 고문해서 유리한 재판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불합리를 고치는 게 사법개혁이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현안이다.


문제는 이것이 외부로부터 온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판사들의 자업자득이라는 점이다. 돈과 권력, 승진 혜택 등을 받기위해 불공정한 재판을 하기 시작한 게 쌓여서 사법 불신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재판을 폭력으로 뒤엎으려는 수법이 일반화한 것이다. 이것은 사법 위기다. 사법부가 무너지면 법치도 온전할 수 없다. 위기의 사법부를 구해내는 것은 정부?여당 몫이다. 대법원이 앞장서서 정치권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일을 해야 할 정부?여당이 판사를 매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큰 문제는 대법원조차 이런 일을 바로잡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해 밥그릇 싸움에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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