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등산을 가기 위해서다. 7시 30분 차를 타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관광버스가 출발하려면 십 여분 이상 남았지만 등산복 차림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저쪽에서 누군가 반색하며 다가온다. 선거철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붉은 옷을 입었으니 필시 자유한국당 후보일 것이다. 저 색깔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던 시절 여당을 상징하는 색은 푸른색이었다.


어떤 일로 상징색을 바꿨다. 붉은색이 상징하는 것은 도전과 선동이다. 집권당을 타도하려는 도전정신이 바로 붉은색이다. 집권당이 그 색을 쓰더니 야당이 되어 버렸다. 묘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박봉규 후보로부터 명함을 받아든다.


정우택 의원이 후보시절 상황실장을 역임했다니 정치를 잘 알 테고 판세분석능력도 탁월할 것이다. 건투를 빈다는 말을 남기고 차로 올라가려는데 박봉규 후보가 누굴 급히 부른다.
탤런트처럼 잘 생긴 얼굴이다.


“이종옥 도의원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명함을 받아들고 걸으면서 흝어본다. 눈에 뜨이는 경력이 하나 있다. 공인중개사 협회 충북 대의원이라는 것이다. 부동산을 하다가 도의원까지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버스를 향해 가다가 깜짝 놀란다. 충북 교육감 후보다. 심의보라는 이름보다 다섯 살 때 천자문을 뗀 신동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와 초중고등학교 동문인 황신모라는 이름도 연상된다. 1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이 단일화 과정을 겪으면서도 호연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차에 오른다. 자리에 앉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온다.


TV에서 많이 본 얼굴이다. 곱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명함을 받아든다. 기호 1번 이숙애 도의원이라는 명함이 활짝 웃고 있다.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게 아니다. 비록 말은 없지만 눈으로 대화를 하면서 도장까지 찍는다.


무슨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심의보 교육감 후보가 올라온다. 일장 연설이라도 할 것처럼 마이크를 잡는다. “이 자리엔 제가 학창시절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누님도 타셨습니다.”
의외의 말이다.


뜻밖의 얘기에 오히려 참신함을 느낀다. 저렇게 순박한 사람이 교육을 책임지면 아이들도 순수해 질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차가 출발할 시간이 다 돼가는 데 허겁지겁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신용한이라는 이름이 그의 얼굴보다 먼저 보인다. 오송에 국회 분원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생각난다. 차에 타자마자 명함을 뿌리며 “확 바꿔놓겠습니다.” 라는 말을 해댄다.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고하자 황급히 내린다.


뭔가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버스는 7시 30분에 출발한다. 다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안다. 산행 일정표를 나눠 주는 사람이 박현순 청주시 의원이라는 사실은 다른 사람을 통해 안다.


소속 정당을 표시하는 유니폼도 입지 않았고 이름 석자를 어깨에 두르지도 않았다. 소금산에 도착해서 찰밥을 나눠 주는 것을 본 사람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소릴 듣고서 안 것이다.


특이한 후보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탁할 일이 하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청주시 상당구 중고개로 261번지에 있는 3층이 문제의 건물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진입로를 막고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목에 걸린 가시 같다는 기분을 느꼈다.


청주시가 그 건물을 매입해 로터리를 만들면 교통이 확 뚫릴 것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멈칫하다가 지방의원이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면서 용기를 낸다.


산행을 마친 차가 주차장에 도착한다. 박현순 시의원에게 잠깐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한적한 곳으로 이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마침 도시건설위원회 소속이니 이런 일을 하기가 좋습니다.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시원한 답변을 듣고 귀가하면서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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