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현관문을 열면 신문이 있다. 책 한 권 분량의 신문을 읽으며 특성 하나를 발견한다. 하극상이란 단어다. 오늘 이 신문은 하극상 문제를 중점적으로 부각하려고 작정한 것 같다.


우선 1면부터 그렇다. 군의 '막장 드라마'란 제목으로 시작한 기사는 국방장관과 기무사 간의 공방을 대서특필했다. 국방장관이 거짓말을 하면 기무사가 반박할 수는 있다. 그게 민주국가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도 장관 말이 거짓이라고 대드는 기무사를 놀라운 눈으로 보면서 하극상이란 말을 떠올리는 것은 군의 특성 때문이다. 군은 국가를 지키는 조직이다. 적과 싸워서 이겨야만 존재 의미가 있다.


그러가 위해서는 명령에 복종해야하고, 사사건건 말다툼만 하는 기강으론 적을 이길 수 없다. 더구나 기무사는 국방장관 직속이다. 육해공군 동향을 파악해서 장관은 물론 대통령에까지 보고하는 정보기관이다.


충성심을 생명으로 하는 기무사가 국방장관의 말이 거짓이라고 대드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대한민국 군대가 막장까지 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군대는 아무리 많아도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제 몸조차 지키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병력을 50만 명으로 줄이고 복무기간도 단축한다고 하니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130만 인민군을 막아낼 수 있을까? 신문을 몇 장 더 넘기면 놀라운 기사가 또 있다.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전국 중소기업 900여 곳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책정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것이다. 불복종 운동이란 정부의 통치권에 저항한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반란지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전국각지에서 벌어질까?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으니까, 이판사판 심정으로 선택한 것이다. 장사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종업원을 채용하는 것은 봉급을 주고도 내가 먹을 게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주인이 먹을 게 없으면 장사를 때려치우거나 종업원을 해고하는 수밖에 없다. 이도저도 못하겠으면 법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불복종운동의 원인이다. 민주국가는 법치국가다. 법을 무시하는 일이 일반화되면 무정부 상태다. 무정부상태는 약육강식의 폭력사회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복종 운동까지 벌이게 된 과정을 사과한 게 아니라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한 걸 사과했다.


사태를 진정시킨 게 아니라 악화시킨 꼴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신문을 몇 장 더 넘긴다. 여기도 놀라운 기사가 있다. '양승태 압수수색 영장기각', '치고 받는 검찰과 법원'이란 기사가 눈길을 끈다.


검찰이 전 대법원장 비리를 수사할 수 있고,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 압수수색도 할 수 있다.


문제는 판사들이 툭하면 영장을 기각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검찰은 속수무책이다. 고작 언론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정상적이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감히 법원을 압수수색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높은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법원의 권위가 무너지면 재판의 공신력도 추락한다.


누구든 판사가 징역을 선고하면 감옥에 가야하고, 사형을 선고해도 죽어야 한다. 판사는 법이고 법은 곧 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판사가 툭하면 검찰 조사를 받고 압수수색을 당한다면 누가 그 판결에 순응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신문을 또 넘기자 하극상보다도 더 절박한 기사가 보인다. '태풍이라도 오길 바랐건만…' 태풍은 재앙이다. 태풍이 지나가면 천문학적인 피해를 당한다. 그런데도 태풍이 오기를 바랐지만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기사다.


얼마나 더우면 자폭적인 마음을 가졌을까? 얼마나 답답하면 저 죽을 지 뻔히 알면서 하극상을 할까?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이게 요즘 우리 사회의 자폭적인 모습이다. 국민이 삶에 애착을 갖고 정부에 순종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순전히 정치의 몫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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