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광호 한국인터넷뉴스 발행인
감수(監修) : 최종웅 소설가


이대한을 실은 호송 버스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큰길로 계속 가면 대전이고, 우회전을 하면 청주교도소다. 이대한은 직진을 하고 싶다. 그 길로 가면 대전도 갈 수 있고, 부산도 갈 수 있다. 자유를 찾고 싶은 것이다.

“죽음이 아니면 자유를 달라!”

목청껏 외치고 싶다. 한바탕 몽니라도 부리고 싶다. 그런데 차는 우회전을 한다. 구속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대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감는다. 하늘에서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멈췄던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바뀌더니 뻥뻥 쏟아진다.

청천 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대한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하늘이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고는 날씨가 이렇게 돌변할 수가 없다. 지금은 4월 중순이다,

눈이 날릴 리가 없는 계절이다. 길조일까? 아니면 흉조일까? 이대한은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눈발 속에 세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다. 하나는 검사다. 서영춘처럼 생긴 검사의 얼굴이 우스워 보이지 않는다.

무섭게 보인다. 독사 눈처럼 날카롭게 보이는 김혁수 검사가 눈발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온몸이 굳는다. 얼른 눈길을 허공으로 돌린다. 그다음에 보이는 것은 판사의 얼굴이다.

영화배우 백일섭처럼 사람 좋게 생겼다고 안도했더니 웃으면서 뺨을 친 작자다. 지금도 황급해 보이는 모습이다. 무슨 일이 그리 급한지 부랴부랴 몇마디 하고는 구속적부심 재판을 끝냈다.

“사이비 신문 사장은 검찰이 잡아다가 기소하면 판사가 구속해 처벌할 수 있지만, 사이비 법조인은 어떻게 처벌할 수 있단 말인가?“

검사가 억울하게 사람을 구속했으면 판사는 신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판사도 검사와 한 통 속이면 굳이 재판 할 필요가 있는가?. 지금도 판사는 급해 보인다. 판사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자취를 감춘다. 이대한은 그의 등 뒤에 대고 욕설을 퍼붓는다.

“천 년 만 년 그 짓거리나 해쳐 먹고 살아라.”

악담이라고 퍼부었는데 사실은 욕이 아니다. 무슨 말을 해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세 번째 남자는 웃는 모습이다. 하얀 눈발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그 속에서 나타났다.

그런데 사기성이 있어 보인다. 살며시 웃으면서 다가와 귓속말을 하던 국선변호인이다. 왜 저런 사람에게 국가는 수십만 원씩의 보수를 주는 걸까? 어째서 저런 사람에게 변호를 부탁했을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선변호인은 백해무익한 존재라는 인식만 심어 준 사람이다. 세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직무에 충실했다면 이대한은 풀려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세 사람 모두 불성실했다. 사이비만 만난 것이다. 검사는 내게 사이비 신문사 사장이라고 했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판사는 절대 사이비 언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국선변호인은 무성의했다. 털도 안 뜯고 날로 먹으려고 했다. 구속적부심을 하는 날 법정에서 처음 봤다. 무성의의 극치다. 저들이야말로 사이비 법조인들이 아닌가.

판사 검사 변호사는 경쟁 관계 같지만, 사실은 동업 관계다. 명문대학 법과를 졸업했으니 동문이다. 사시에 합격해서 함께 사법연수원을 다녔으니 동기 아니면 선후배다.

판사를 하다가 퇴직하면 변호사를 하고, 검사를 하다가 판사를 하거나 변호사로도 만나니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다. 그 끝나지 않는 인연이 바로 동업의식이다. 어떻게 동업자를 함부로 대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재판이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전관예우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이대한은 커다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기분이 든다. 이때 그의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있다.

“재판하느니 차라리 조폭에게 부탁하는 게 훨씬 빨라."

얼마나 법원을 불신했으면 이런 말이 유행할까? 월세도 안 내고 나가지도 않는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몇 년씩 소송 하느니 조폭에게 몇십만 원만 주고 부탁하면 단 며칠이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끽!”

갑자기 호송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난다. 멍하니 공상에 잠겨 있던 이대한이 깜짝 놀란다. 차는 어느새 청주교도소 부근까지 온 것이다. 교도소는 국가보안시설이다.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한 과속 방지턱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외부 충격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힘이 있나보다. 이대한의 생각은 옛날로 돌아간다. 이 지역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친다. 아직도 눈발은 사월 달 하늘을 하얗게 뒤 덮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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