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수는 모처럼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아침신문을 훑어가던 최백수는 마음이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이 입원하는 날이고, 내일은 수술을 예약해 놓은 날이다.


근데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수술없이 시술만으로 완치할 수 있는 신기술이 개발되었다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그냥 신문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간다는 중앙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렸으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급작스런 변경이라서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었다. 아내의 동의를 받고서야 서울행을 결심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허리는 수술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애써 수술하고도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부작용을 초래하느니 헛일 삼아 한번 가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최백수는 남부터미널에서 전철을 타러 지하계단을 내려가면서부터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통증은 점점 심해져서 단 한 발짝도 옮길 수가 없을 정도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 수도 없어서 그냥 멍하니 서 있다.


겨우 교대역까지 간다. 6번 출구에서 병원 간판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내쉰다. 여기서 수술하지 않고 고칠 수만 있다면 천하를 얻는 기분일 것이다.


입원도 하지 않고 단 30분의 시술로 거뜬히 걸어 나올 수 있다는 신문기사가 자꾸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최백수가 가지고 올라간 CT를 본 의사가 말한다,


"척추관 협착증이 너무 심합니다. 이것은 시술로는 불가능하고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경험이 많은 의사한데 받지 않으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잘하는 의사 소개해 드릴까요?"


최백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실망감을 느낀다. 오늘 입원해서 낼 수술하기로 예약했었는데, 그것을 깨고 서울까지 왔다. 그런데 고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의사를 향해서 신문기사하고는 다르지 않느냐고 항의라도 하고 싶다.


최백수는 북청주행 버스를 타면서 길은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청주 하나병원에 전화해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이다. 다행히 낼 입원하면 모레 수술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예약한다.


최백수는 수술을 받고 나와서 신기해한다. 거짓말 같은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제 입원할 때까지만 해도 입원실 복도를 걸을 수 없었다.


길지도 않은 복도를 다 걷지 못해서 의자를 찾아 쉬곤 했다. 그런데 이제 막 수술을 끝내고 나왔는데 아무런 통증도 느낄 수 없다.


왼쪽 엉덩이의 통증도 없고 종아리가 마비되는 증상도 없다. 물론 바른쪽 엉덩이의 저린 증상도 없어졌다.


그냥 없어진 게 아니라 감쪽같이 없어졌다. 성서에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선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신이 이렇게 신기한 체험을 할 줄은 몰랐다.


최백수는 입원실 복도를 걷고 또 걷는다. 처음엔 거리가 짧아서 통증을 못 느끼는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입원실 복도만으로는 부족해서 본관 별관 복도를 찾아서 돌아다닌다.


그래도 통증이 없다. 언제 통증이 있었느냐 싶다. 최백수는 드디어 완치를 실감한다. 의사 선생님을 잘 만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기뻐한다. 사방에 톡을 날린다. "수술 성공, 드디어 완치!"라고.


입원실엔 7명의 환자가 있다, 최백수의 신기한 얘기를 듣고 있던 환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거인처럼 키가 큰 중년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친다.


"전 목이 아파서 기절할 정도였는데 열흘 전에 수술 받고 이렇게 멀쩡해졌어요. 전 낼 퇴원합니다."


이 말을 듣고 한 할아버지가 합세하듯 말한다.


"나는 허리가 아파서 옴짝달싹 못했는데 정천웅 진료부장님한테 수술 받고 일주일 만에 완치됐어요."


최백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명의 '화타'를 생각한다.


아무리 실력이 우수하더라도 조조처럼 불신하는 환자에겐 돌팔이가 될 수밖에 없지만 관우처럼 믿어주는 환자에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명의가 되는 것이라고.


이런 이치로 따지면 명의는 우리 주변 어디에도 흔하게 있는 것인데 일류대학 출신만 찾는 환자들의 허황한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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